2010/11/11 22:37 분류없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도시
1.대립의 공간으로서의 ‘도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로 대변되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노동자의 삶의 모습, 1970년대의 핵심문제인 노동 문제를 통해 자본주의적 모순으로 가득찬 ‘도시’라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갈등과 대립으로 내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공간적으로 도시 변두리의 철거민 촌과 주택 촌, 계층적으로는 비숙련 노동 계층의 비참한 생활상과 잘사는 계층의 화려하고 타락한 생활상의 대조적 모습을 통해 도시 속 계층간의 대립이 얼마나 치열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소설을 통해 본 도시 공간의 의미를 크게 나누어 본다면, 첫째 물신화와 인간 소외 속에서 갈등하는 도시, 둘째 산업화에 의한 공해로 피폐해진 도시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영수의 말과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은강 그룹 총수의 아들 경훈의 대조적인 말을 통해 도시라는 공간이 얼마나 차갑고 소외로 가득찬 공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강’이라는 공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어쩔수 없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바랄수도 없는 피폐해진 도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 계층적 갈등의 장으로서의 ‘도시’
이 소설에 가장 큰 축이 되는 갈등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언제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은 더욱 심하다. 하루 아홉 시간이상의 고된 노동에 잠깐의 휴식이 전부인 노동자의 생활, 시간 외 근무수당의 부적절한 지급과 동료의 부당 해고에 항의하지만 결국 해고자 명단에 오를 뿐이다. 근로자 측과 임금 인상과 정당한 이윤 분배에 대해 요구하지만 사용자 측은 근로자 측을 사사건건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들어줄 것이 없다고 대답할 뿐이다.
그리고 철거민에게 그들이 ‘딱지’라 불리는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입주권은 사실상 그들의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아파트 입주는 한낱 희망이자 사치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가진 자’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는 ‘가진 자’를 위한 증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일 것이다. 곱추와 앉은뱅이가 헐값에 팔아버린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입주권을 산 사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도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철거민과 그들에게서 입주권을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사 들인 부동산업자 사이의 갈등에서 피해자인 철거민이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것이다. 결국 ‘도시’는 이러한 계층적 갈등 속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를 말할 수 없는 모호한 공간이 되고, 오직 갈등과 대립만이 지속되는 공간이 되어버릴 뿐이다.
3.인간 소외의 장으로서의 ‘도시’
‘도시’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자본주의적 가치를 가진 인간을 원한다.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는 ‘인간’보다는 성공과 사회적 명망을 가진 ‘인간’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 떨어진 윤호가 족집게 과외를 받고 예비고사 날 타락하고 쓰레기 같은 인규로부터 답안지를 보여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대신 인규가 은희에 대한 관심을 끊겠다다는 일종의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이데 스스로에게 환명을 느낀 윤호는 자살하기 위해 아버지가 숨겨둔 권총을 찾았다. 그리고 은희에게 권총을 쏴 달나라로 보내달라고 한다. 은희는 권총을 쏘는 대신 어머니가 없는 윤호를 어머니처럼 두 팔로 감싸 안는다.
이처럼 ‘도시’에서의 삶은 계층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한 인간 개인에게서 ‘소외’라는 또 다른 갈등의 양상을 낳는다. 사회가 요구하고, 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의 열등감과 패배감은 더 이상 우리를 이러한 도시에서의 삶을 무력하게 만든다. 윤호의 행동처럼 이러한 현실속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 혹은 도피할 수 있는 곳은 ‘달나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서의 인간 소외는 더욱 심각하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영희는 섭씨 30도 이상 되는 공장 내부에서 졸면서 일했고 작업반장은 조는 영희에게로 다가와 빨간 피가 배어나게 옷핀을 찔렀다. 그리고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공원들이 죽어갔다.
70년대 성장 이데올로기 속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참아가며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쌓인 피로와 사회적 냉대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노동자 계급을 무시하고 배우지 못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하류 계급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4.환경파괴의 장으로서의 ‘도시’
은강은 금속, 도자기, 화학, 유지 , 조선 등으로 유명한 공업지역이다. 공장은 북쪽 지대에 있고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불기 때문에 매0연이 이동을 했는데 어느날 공장 지대 상공에 머물던 매연이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양의 폐수는 바다로 흘러갔다. 이러한 환경 파괴의 도시 속에서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윤호에게 은강그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도시’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열악한 노동 현실속에 노동자들은 매연과 폐수로 가득찬 공간에서 생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화가 보여주는 높은 건물과 아파트 건물들 아래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라는 대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순수한 자연이 결국파괴되어 버린 도시의 환경속으로 버려지게 된다.
5. 릴리푸트 읍
영희는 영수에게 억압, 공포, 불평등이 없는 난장이 마을인 릴리푸트 읍 얘기를 한다. 벽돌 공장 굴뚝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는 릴리푸트 같은 마을에 사셨어야 한다고 했다.
난장이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 바람도 막아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까지 머물게 한다”고 말하며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랑과 미움, 이기와 이타, 탐욕과 희생이 얽혀 있는 도시라는 공간을 좀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법이라는 힘을 갖춘 사랑의 지배를 믿어야 하는 현실은 또 하나의 아니러니가 아닐수 없다.
6. 맺음말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도시’라는 공간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갈등, ‘인간 소외’, 그리고 ‘환경 파괴’ 등 산업화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의 장이다.
소외 받는 도시 빈민의 열악한 현실과 현실 패배,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모순 이러한 것들이 산업화 속에 남은 도시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클라인 씨의 병’이 상징하는 것은 안과 밖이 구별될 수 없는 현실,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세상, 그것은 현실세계에서 보이는 힘과 부의 편중으로 세상이 갇힘과 열림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설수 있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섭이 사랑이 없이 욕망만 떠도는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한다고 난장이에게 말하고서는건네는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