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도시 


1.대립의 공간으로서의 ‘도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로 대변되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노동자의 삶의 모습, 1970년대의 핵심문제인 노동 문제를 통해 자본주의적 모순으로 가득찬 ‘도시’라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갈등과 대립으로 내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공간적으로 도시 변두리의 철거민 촌과 주택 촌, 계층적으로는 비숙련 노동 계층의 비참한 생활상과 잘사는 계층의 화려하고 타락한 생활상의 대조적 모습을 통해 도시 속 계층간의 대립이 얼마나 치열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 소설을 통해 본 도시 공간의 의미를 크게 나누어 본다면, 첫째 물신화와 인간 소외 속에서 갈등하는 도시, 둘째 산업화에 의한 공해로 피폐해진 도시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영수의 말과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은강 그룹 총수의 아들 경훈의 대조적인 말을 통해 도시라는 공간이 얼마나 차갑고 소외로 가득찬  공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강’이라는 공간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어쩔수 없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바랄수도 없는 피폐해진 도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 계층적 갈등의 장으로서의 ‘도시’


이 소설에 가장 큰 축이 되는 갈등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언제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어려움은 더욱 심하다. 하루 아홉 시간이상의 고된 노동에 잠깐의 휴식이 전부인 노동자의 생활, 시간 외 근무수당의 부적절한 지급과 동료의 부당 해고에 항의하지만 결국 해고자 명단에 오를 뿐이다. 근로자 측과 임금 인상과 정당한 이윤 분배에 대해 요구하지만 사용자 측은 근로자 측을 사사건건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들어줄 것이 없다고 대답할 뿐이다.

그리고 철거민에게 그들이 ‘딱지’라 불리는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입주권은 사실상 그들의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여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아파트 입주는 한낱 희망이자 사치일 뿐이다. 그것은 결국 ‘가진 자’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는 ‘가진 자’를 위한 증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일 것이다. 곱추와 앉은뱅이가 헐값에 팔아버린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기 위해 입주권을 산 사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서 ‘도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철거민과 그들에게서 입주권을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사 들인 부동산업자 사이의 갈등에서 피해자인 철거민이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것이다. 결국 ‘도시’는 이러한 계층적 갈등 속에서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를 말할 수 없는 모호한 공간이 되고, 오직 갈등과 대립만이 지속되는 공간이 되어버릴 뿐이다.



3.인간 소외의 장으로서의 ‘도시’


‘도시’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자본주의적 가치를 가진 인간을 원한다. 따뜻한 사랑을 품고 있는 ‘인간’보다는 성공과 사회적 명망을 가진 ‘인간’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 떨어진 윤호가 족집게 과외를 받고 예비고사 날 타락하고 쓰레기 같은 인규로부터 답안지를 보여 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대신 인규가 은희에 대한 관심을 끊겠다다는 일종의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이데 스스로에게 환명을 느낀 윤호는 자살하기 위해 아버지가 숨겨둔 권총을 찾았다. 그리고 은희에게 권총을 쏴 달나라로 보내달라고 한다. 은희는 권총을 쏘는 대신 어머니가 없는 윤호를 어머니처럼 두 팔로 감싸 안는다.

이처럼 ‘도시’에서의 삶은 계층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한 인간 개인에게서 ‘소외’라는 또 다른 갈등의 양상을 낳는다. 사회가 요구하고, 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의 열등감과 패배감은 더 이상 우리를 이러한 도시에서의 삶을 무력하게 만든다. 윤호의 행동처럼 이러한 현실속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 혹은 도피할 수 있는 곳은 ‘달나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서의 인간 소외는 더욱 심각하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영희는 섭씨 30도 이상 되는 공장 내부에서 졸면서 일했고 작업반장은 조는 영희에게로 다가와 빨간 피가 배어나게 옷핀을 찔렀다. 그리고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공원들이 죽어갔다.

70년대 성장 이데올로기 속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참아가며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쌓인 피로와 사회적 냉대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노동자 계급을 무시하고 배우지 못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하류 계급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4.환경파괴의 장으로서의 ‘도시’


은강은 금속, 도자기, 화학, 유지 , 조선 등으로 유명한 공업지역이다. 공장은 북쪽 지대에 있고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불기 때문에 매0연이 이동을 했는데 어느날 공장 지대 상공에 머물던 매연이 주거지를 향해 불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양의 폐수는 바다로 흘러갔다. 이러한 환경 파괴의 도시 속에서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는 윤호에게 은강그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해 은강그룹의 경영주를 죽이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도시’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열악한 노동 현실속에 노동자들은 매연과 폐수로 가득찬 공간에서 생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화가 보여주는 높은 건물과 아파트 건물들 아래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라는 대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순수한 자연이 결국파괴되어 버린 도시의 환경속으로 버려지게 된다.


5. 릴리푸트 읍


영희는 영수에게 억압, 공포, 불평등이 없는 난장이 마을인 릴리푸트 읍 얘기를 한다. 벽돌 공장 굴뚝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는 릴리푸트 같은 마을에 사셨어야 한다고 했다.

난장이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 바람도 막아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까지 머물게 한다”고 말하며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랑과 미움, 이기와 이타, 탐욕과 희생이 얽혀 있는 도시라는 공간을 좀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법이라는 힘을 갖춘 사랑의 지배를 믿어야 하는 현실은 또 하나의 아니러니가 아닐수  없다.


6. 맺음말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도시’라는 공간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갈등, ‘인간 소외’, 그리고 ‘환경 파괴’ 등 산업화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의 장이다.

소외 받는 도시 빈민의 열악한 현실과 현실 패배,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모순 이러한 것들이 산업화 속에 남은 도시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클라인 씨의 병’이 상징하는 것은  안과 밖이 구별될 수 없는 현실, 갇힌다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세상, 그것은 현실세계에서 보이는 힘과 부의 편중으로 세상이 갇힘과 열림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설수 있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섭이 사랑이 없이 욕망만 떠도는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한다고 난장이에게 말하고서는건네는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은 새로운 세계,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osted by 불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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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09:28 Essay-bReaK!!

4천원 인생

 


「4천원 노동에서 4만원 희망으로」


비정규직 바이러스

 1997년이라는 해는 한국사회가 지난 50여 년 동안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발전의 환상이 무너져 버린 암울한 해로 우리 국민들의 기억 속에 자리 남아 있을 것이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문화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라는 차갑고도 냉정한 경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OECD 회원 국가라는 자부심은 한 순간에 무너졌고, 회사와 공장은 연쇄 도산하고, 끝없는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는 국민들을 전쟁터와 같은 참혹한 현실로 내몰게 만들었다.

그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시일 내에 IMF의 빚을 다 청산해버렸고, 한 발짝 더 나아가 G20 의장국으로서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래서 이제는 세계 속에서 국격을 강조하는 나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성장 뒤에 암울하게 가려져 있고, 아직까지 IMF의 풍파가 빚은 잿더미 같은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상황 중에 하나가 아마 우리 사회 전반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변되는 불안 고용 또는 불안 노동의 일반화 혹은 일상화일 것이다. 대량해고와 실업의 뫼비우스는 끝없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이들은 노동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조차도 정규직으로 편입되지 못한 채, 사회적 소외감과 경제적 어려움들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곧 사회계층의 양극화로 우리사회에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IMF 이후 아주 당연한 현상이 되어버린 이 비정규직 바이러스는 경제적 합리성, 경쟁력,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노동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어, 젊은 세대, 여성, 노인, 외국인 등 각 우리 사회의 계층, 계급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인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않은 ‘좀비’와 같은 존재로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다. 노동은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자아의 실현과 행복을 추구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자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삶은 이러한 기반을 뿌리 채 흔들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래를 설계하고, 가족을 보살피고, 삶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하루하루의 위태로운 상황과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외환위기는 해결되고, 기업들은 최첨단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가장 아래에서 이러한 발전을 지탱해 주고 있는 노동자의 삶은 언제나 그 자리이다. 여전히 노동조건은 열악하며, 미래와 희망을 꿈꾸기에는 현실은 냉혹하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역설적으로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사회의 젊은 세대에게 여유와 낭만은 이미 사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그 멀고도 먼 대학입시를 치르자마자, 또 취업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모든 젊음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토익, 해외연수 등 취업에 필요한 것은 뭐든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정규직으로 뽑히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삶은 끊임없는 불안감의 연속일 뿐이다. 정규직으로 된다손 치더라도, 끊임없이 올라가는 아파트 가격에, 물가에 치여 인생을 관조적으로, 실존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온 외국인들 역시 불법체류자, 불법노동자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단속에 대한 불안감만은 참기가 힘들다”라는 외국인 노동자의 말이 얼마나 사무친 절망인지를 새삼 깨달게 된다. 소위 3D 업종이라고 불리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그들의 노동에 우리사회는 얼마나 고마워하고, 그들을 위해 더 많은 복지와 관심, 그리고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깨닫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에 대한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선을 그은 채, 그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거나,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칫 문제의 인식 자체에서 잘못된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가 인종, 국가 등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없이 그들을 같은 사회를 구성하는 동반자로 바라 볼 수 있을 때 다문화 사회가 우리사회를 질적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원천임을 우리는 시급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비정규직 바이러스, 차별 바이러스를 치료할 강력한 백신이 개발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이미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너무 거센 듯 하다.


불친절한 사람들

 가끔씩 고깃집이나 감자탕집 등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될 때 불친절한 서빙을 받는 경험이 종종 있다. 점심시간이나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식사를 하게 되면 서빙하시는 분들의 바쁜 얼굴들을 마주치게 되는데, 대부분 그들의 얼굴은 어둡고 피곤해 보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서빙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다. 바쁘고 급한 건 알지만 왠지 그런 불친절한 서빙을 받을 때는 엄연히 돈을 지불하고 식사를 하게 되는 사람 또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서빙받는 사람도 바쁘고, 서빙할 사람도 바쁘다. 이렇게 바쁜 사회는 생계를 위하여 12시간 이상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세상을 바라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표정은 밝을 수 없다. 밝은 수 없는 표정은 손님에게 전이되어 그 손님들도 밝지 않은 서비스를 받게 되고, 그것이 사회로 다시 순환이 된다. 열악한 노동 현실은 우리 사회 전반을 불친절하고, 무표정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들의 불친절을 되새기고, 사회가 개인의 삶을 불친절하게 만드는 기제를 면면히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친절 사회의 근원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못하는 이 사회의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이며,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가치를 경쟁력 또는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일 것이다. 4천원 인생에서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와 현실의 무게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노동에 소외된 모든 이들을 투명인간이 아니라 현실에서 끊임없이 삶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가진 실존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부터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일차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비록 시급 4천원의 노동 가치로 물화되어 버리는 우리이지만, 그 꿈과 희망만은 시급 4만원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평불만을 시끄럽게 늘어놓는 것’이 현실을 바꾸는 시작임을 명심해야겠다.


현실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노동의 새벽에 희망의 빛이 언제나 밝아 옴을 잊지 말도록 해야겠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


Posted by 불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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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2 16:24 K-BReak!!

빨래

이적(사랑/2010)

빨래


주말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을 때
어디 밖을 나가기도 그렇고,  또 혼자 추적거리는 거리를 걷는 다는 것이 서글퍼 질 때
TV 프로그램들의 의미없는 시청에 정신이 멍해질 때

빨래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빨래는 세탁기가 합니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선
방 청소를 합니다.
한세트-패키지 코스입니다.

진공청소기의 소음을 뒤로하고
라디오의 음악을 흥얼거리며
먼지를 닦습니다

거의 잠만 자는 방인데도
이놈의 먼지는 어디서 나타나는지  TV 브라운관에도, 침대 머리맡에도, 책상위에도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추억도 이 먼지처럼 쌓였다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물걸레질로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비우고
설겆이를 마무리하면
오후가 지나갑니다.

그러면, 주말도 또 같이 지나갑니다. 그렇게 사랑도, 추억도, 열망도 다..지나갑니다.
빨래는 한다는 것은
이 노래처럼 기억을 비우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뾰족한 해답은 없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다 끝난 빨래들을
빨래 거치대에 널어 말리고
말려있는 빨래들을 개어서 또 일주일 분을 저장해 둡니다.

우리의 사랑도 빨래처럼 잘 말려서 다음 번 사랑에 잘 쓰일 수 있도록 잘 개어 놓아야 겠습니다.
비가 와도 좋습니다.
2010.10
By BULsal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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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그래도 상관은 없어요. 괜찮아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나을까 싶어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 지 몰라요.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그대가 날 떠난 건지 내가 그댈 떠난 건지
일부러 기억을 흔들어 뒤섞어도
금세 또 앙금이 가라앉듯 다시금 선명해져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서
그게 참 말처럼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뒤집혀버린 마음이 사랑을 쏟아내도록
그래서 아무 것도 남김 없이 비워내도록
나는 이를 앙 다물고 버텨야 했죠
하지만 여태 내 가슴 속엔

그게 참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아서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빨래를 해야겠어요. 오후엔 비가 올까요.

Posted by 불살라
 TAG 빨래, 사랑,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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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연애조작단(감독: 김현석 /2010)

아바타들
연애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착각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전략적인 움직임과 상황으로 사랑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정한)사랑은 단기적인 환심과 관심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교감과 신뢰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있는 것을 있는 정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 그 빛을 발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꾸미지 말고 '날것'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연애조작단에 연애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짝사랑쟁이들입니다. 짝사랑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그들은 슬쩍 자신을 스스로 아바타로 만들려 합니다. 타인의 조종을 통하여  자신의  진심이 빠진 채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하지만 연출된 상황과 인위적인 행동들은 결국 그 사람에게 진심을 전달 할 수가가 없지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나가선, 결국 불편한 맘만 크지는 법입니다.

공갈단들
사랑을 철저히 계산적이고 전략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라노팀들 또한 자신들이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전략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As까지 책임질 수 업습니다.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만남의 장을 연결해 주는 것에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이루어 줄 수 있다는 것은 '공갈'입니다. '조작'이고 '환상'이지요. 어쩌면 이들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연애초짜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시라노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에게 나설 수 없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그런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설 수 없는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시라노와 같이 자신의 마음을 타인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는 것은 참 가슴아픈 일입니다.
사랑에 있어 용기는 결코 쉽지 않고, 영화처럼 우연히 낭만적으로 상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결정의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섣부른 결정은 더 큰 후회를 낳곤 합니다.
우리시대의 시라노 사랑은 여전히 어렵고, 복잡합니다. 마지막의 결말이 영화처럼 유쾌했으면 얼마나 좋기를 기대합니다.

by bulsalra


Posted by 불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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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과 그의 아내(김현주 / 2001)


21세기 신(新) 소수자 ‘장남’


 20세기 이후, 우리 사회는 근 백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중 우리의 문화, 의식, 정체성 등 또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농경사회와 유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왕권 중심의 사회로 대변되는 가부장중심의 가족제도 또한 서구화된 자본주의 사회로의 편입과 더불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 이 중 가부장적 가족의 중심에 서 있는 ‘장남’의 의미와 그를 둘러싼 가족과의 대내외적인 관계 또한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의미로 바라 볼 필요 있음을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한편, 본격적으로 현대화된 자본주의적 가치가 우리사회에 내재화되기 전에(대략적으로 한국전쟁 전후) 태어난 아버지들은(특히 장남들) 집밖에서는 변화된 시대와 가치를 따라잡지 못하고, 집안에서는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게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소외의 또 다른 의미인 ‘소수자’로 전락하고 마는 존재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온 가족(가문)의 기대와 혜택, 그리고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고 자라온 그들에게 장남의 의무라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종교적인 미션과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통적인 신념들이 서구화된 핵가족화와 여권의 성장과 민주화와 같은 새로운 가치와 맞부딪힐 때 그들이 받을 문화적 충격 또한 얼마나 큰 것임을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직장 등 외부에서는 여권을 강조하고,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얼마든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외치고 다니지만, 실상 가족 내부에서 그의 생각은 전통적인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평생을 전통적 가치를 배우고 체화된 습관을 쉽게 버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장남의 아내


 한국사회에서 장남의 아내는 어떤 존재일까? 어느 집안의 맏며느리라는 존재는 남편의 가족 혹은 가문을 위하여 끊임없이 희생하고 인내해야 하는 삶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가문의 대를 위해서 아들을 낳아야 했고, 집안의 대소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버려야 했고,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를 했어야 했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전통적 가치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이 책에 나온 인터뷰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과거에 비해서는 좀 더 민주적이고 수평적으로 변화하였지만, 새로운 가치관들이 전통과 부딪히며 갈등하는 상황들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장남과 그의 아내와의 갈등의 중요한 요인들 중 하나는 그 둘과 그들을 둘러싼 가족관계일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결국 남편-아내-시부모의 3자 관계는 장남부부의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또는 불행하게도 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진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남은 가족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 때와 또 다르게 장남부부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우선 많은 가정들이 맞벌이 가정의 보편화로 부부내 권력관계가 대등해짐(혹은 수평화)에 따라 장남부부들 역시 일방적으로 남편의 가족에 대한 모든 대소사를 책임지려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부모들 또한 그들의 자식들과 어느 정도의 심리적 거리감을 둠으로써 자신들의 개인적 생활에 충실하려는 경향을 자주 볼 수 도 있다. 일례로 자식과의 분가는 물론, 자식의 결혼 전에 손주를 돌보지 않을 것을 못 박는 부모들도 늘어가고 있다. 여기서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결국 부모든 자식이든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으로 얼마만큼의 능력과 지위를 가지느냐의 문제가 새로운 가족관계를 구성하는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왕성한 사회활동이 가능한 부모는 더 이상 자식(장남)에게 의존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식들 또한 그런 부모에 대한 의무감도 줄어 들 것이다. 교육의 평준화와 사회 가치의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장남과 그의 형제들 또한 과거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변화되며, 과거 장남의 역할도 수평적으로 분배되며, 여기에서 사회적 혹은 경제적 지위에 따라 장남의 역할도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변화된 사회에서 장남의 아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 존재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 확대, 출산률의 저하 및 한자녀 가족의 일반화, 이혼의 보편화(?)는 부계중심적인 전통사회의 구조를 뒤흔들고 있으며, 장남의 아내는 과거에 비해서는 그 의무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해 나가며, 남편과 아내,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일방이 아닌 상호 조정과 타협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장남의 역할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실체는 장남 자신이 아니라 장남의 아내이다. 장남을 장남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아내인 것이다(p59)”라는 말은 우리사회의 특수한 가족에 대한 개념, 구조를 무시한 비약적인 설명인 것 같다. 장남을 장남으로 만드는 것은 장남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부모를 포함 한 사회·문화의 총체적인 구조로 설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장남이 자신의 출생순위 덕에 부모로부터 정신적·물질적 특혜를 받으며 사회화된 존재로만 볼 수 없음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장남 또한 전통적 사회의 가치에 억눌린 또 하나의 피해자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인 장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장남은 자신의 가족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끊임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외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그의 아내 역시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며, 장남의 부모 역시 장남이 가족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모든 것을 걸고 지원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로, 이 모두가 한국사회가 구조화한 부계중심주의에 의해 소외된 개체들로 이해해야 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하여, 장남 부부가 그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방식과 인식들로 가족관계를 구성해 나가는 것을 엿볼 수 있었고, 작자가 지적하듯 끊임없이 ‘변화’되는 가족의 의미들을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것이 어쩌면 현대사회의 부부 관계에게 있어서는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씁쓸한 의문이 든다. 서구화된 사회와는 다른 우리사회의 전통적 미덕으로 볼 수 있는 ‘효’가 부부관계를 대립적인 요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것은 일방이 아닌, (정서적, 경제적, 문화적 권력 구도에서의) 수평적인 부부관계를 바탕으로 부부의 양부모에게 능동적 응집과 긍정한 상호성을 기반으로 한 대등한 공경을 통하여 이 책에서 구분하는 있는 가족감정의 ‘자유로운 증여’로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우리사회에서는 장남과 그의 아내와의 행복을 위한 요건으로는 그 둘 사이의 친밀한 사랑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만이 필요할 뿐, 그 외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내가 전통적 가치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던 장남이었다면, 어느날 문득 마음속으로라도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한번 써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씁쓸한 한국의 가족 사회에 대한 이 서평을 마친다.

 

당신에게...

당신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데도 한번도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소.

나와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당신에게 나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매정한 타인이었을 뿐이요.

나는 장남으로 태어난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였기에, 나의 부모, 조상들에게 받은 내 의무를 쉽게 버릴 수 없었소.

집안의 중심이자, 가장인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식이 아닌 아버지가 되었고, 적군 앞에서 자신의 두려움을 군사들 앞에서 보여줄 수 없는 장군처럼 강인하고 엄한 사람이 되어야 했소. 그래서 나를 속이고, 당신을 속이고, 부모와 자식을 속이며, 나를 둘러싼 무거운 짐들을 짊어진 채 흔들림없는 기둥처럼 살아 갈 수밖에 없었소.

어쩌면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내게 평생 길들여진 장남으로서의 나의 존재와 의미가 일시에 무너질 것만 같아 두려웠소. 나는 겁쟁이었소.

나는 외로운 길을 혼자 갈 수 밖에 없었으며, 당신을 또 다른 외로운 길로 내 몰 수밖에 없었소.

나는 대한민국의 장남이었소. 그것이 내 존재이자 내 이름이었소.


Posted by 불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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